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관 포청천 (문단 편집) === [[대한민국]]에서의 인기 === 대한민국에서는 [[시네콤]] 등의 비디오 회사에서 VHS로 발매했었고, [[MBC]]에서 [[1994년]] [[추석]]특선으로 두 에피소드를 방영했는데[[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91800329111005&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09-18&officeId=00032&pageNo=11&printNo=15204&publishType=00010|#]][* 41개 에피소드 가운데 초반 두 편인 진가장원, 찰미안이다.], 의외로 반응이 괜찮아 전편을 방송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MBC]]에서 전편 계약을 망설이던 차에 [[동아수출공사]]가 대만 [[중화 텔레비전|CTS(華視)]]에 전편 계약을 하여 1993년판을 1994년 10월부터 [[KBS 2TV]]를 통해 정규방송으로 편성[[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01400289119018&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10-14&officeId=00028&pageNo=19&printNo=2037&publishType=00010|#]], [[시청률]] 45%라는 대박을 친다. 단지 당시의 시청률과 현재의 시청률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해도 정말 대단한 인기였다. 판관 포청천을 방영하던 금요일에는 택시 기사들도 그 시간 이전에 집으로 가버리는 데다 택시를 놓친 이들이 근처 식당에 들러 식사를 주문하고 판관 포청천을 틀고 주인과 손님이 같이 방송을 보던 게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의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아성을 넘어선 건 [[허준(드라마)|허준]]과 [[국희]]가 있지만 허준과 국희가 자국 드라마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판관 포청천이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중국무협이라는 장르는 국내에도 익숙해진 상황이었지만 포청천처럼 수사와 추리, 재판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드라마는 없었다. 이런 특징 덕에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이것은 곧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악인이라면 황족이고 고관 대작이고 나발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친구조차도 한치의 용서없이 단호하게 작두로 응징하는 모습을 본, 썩은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어필하여 폭발적인 시청률을 자랑하게 되었다. 더불어 부실공사와 비리 등으로 인한 사건 사고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이에 허탈감을 느낀 국민들이 포청천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 포청천을 방영하던 KBS에서 명절 특집으로 에피소드 전편을 명절 기간 동안 다른 방송사에서 같은 시간대에 방영했던 영화들은 판관 포청천의 시청률에 밀려 대부분 보지 않았다는 것에서 판관 포청천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KBS에서 방송한 판관 포청천은 대만에서의 본래 방영 순서에 맞추지 않고 무작위로 방영 전편을 수입하면서 정작 방영순서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해외드라마를 수입해 방영할 때 에피소드 순서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스토리상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다. KBS 방영시의 첫 에피소드는 청룡주였는데 원래 대만판에서는 청룡주가 30부로 판관 포청천이 41부로 끝나므로 후반부의 에피소드였다. 청룡주에서 독거미에 물리는 태후는 이비로 원래라면 4부인 이묘환태자(살쾡이태자, KBS 방송명은 내궁비화) 이후인데 그보다 앞서 나와서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안겼다. 그리고 진가포공(암행기)에서 [[방길|방태사]]가 포청천에게 자기 아들 방욱을 작두형에 처한 일을 잊지 못한다고 따질때 아직 찰방욱(용호상박)이 방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역시 시청자들을 의아스럽게 만든 부분이다.(8부 찰방욱은 KBS에서는 제일 나중에 방영되었다.) 그리고 [[방길|방태사]]가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방비유희(유령혼)는 원래 39번째이지만 KBS에서는 이묘환태자 다음으로 방송했다. 본방 당시 더빙 제작은 [[KBS 영상사업단]], 녹음연출은 [[김웅종]] PD였으며, 그 와중에 이원희PD-이덕옥 번역 체제로 [[https://blog.naver.com/tjddnoscar/221113537980|나가기도 했다.]] 또한 배급처인 동아수출공사가 KBS 더빙판을 토대로 VHS 비디오테이프를 냈다. 한편 [[SBS]]에서는 이에 맞서 역시 대만의 CTS에서 제작한 [[칠협오의]]를 방송했다. 비슷한 아이템의 해외 드라마를 편성한다는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10위 안에 들어가는 등 양호한 상태였지만, 12개 이야기에 75회로 포청천의 1/3이 채 안되는 분량인데다가 상대적으로 포청천의 시청률과 비교해 밀려서 회의를 통해 조기종영 했다가 시청자들의 요구로 결국 다 방영하고 1995년 11월에 종영했다. 본래 판관 포청천의 원작이 소설 칠협오의임에도 한국에서 드라마 칠협오의는 포청천의 아류작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판관 포청천/시리즈 목록]]에도 알 수 있듯이, 포청천 작품을 포함한 두 작품 모두 [[중화 텔레비전]](CTS)에서 방영한 작품이며, 開全傳播股份有限公司가 외주 제작하였고 제작자가 동일하기에 배우들의 중복 출연이 가능했다.[* CTS는 판관 포청천의 최초판인 1974년판의 제작사로 이미 포청천 시리즈로 가장 이름이 나 있어서 관련 시리즈 제작에 타 방송사의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화 텔레비전]](CTS)과 [[중국 텔레비전]](CTV) 문서 참고]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으로 [[조순]] 교수가 나오면서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 "서울 포청천"이라는 선거 운동으로 일약 당선된 것은 유명한 사례. 검은 얼굴과 이마에 새겨져 있는 [[초승달]]이 포인트로 [[성우]] [[노민]]의 열연이 돋보였다.[* MBC판에서는 [[탁재인]]이 담당했다.] 작중 [[명대사]]라고 하면 역시 다음의 3단 콤보. > 1: 來人阿! 狗頭鍘·虎頭鍘·龍頭鍘伺候![* 엄밀히 해석하면 伺候는 "대령하라"보다는 "모셔라"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당시 작두를 포함한 형벌도구는 조정에서 하사한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으며, '(환자를) 돌본다'는 뜻으로 간호사가 자주 사용한다는 인식이 있다.] > '''여봐라! 개작두/호작두/용작두를 대령하라!''' 이때부터 죄수가 이런저런 변명을 하며 저항하고 왕조, 마한, 장룡, 조호가 죄수를 잡는다. > > 2: 開~鍘~ > '''작두를~ 열어라~''' : 발음을 끌어주는 게 포인트. 이 때 장룡과 조호가 작두를 열고 왕조와 마한이 잡은 죄수를 힘으로 제압해 작두에 들이민다. > > (왼손으로 오른 소매를 잡고 한번 탁 털어준다음 오른손으로 斬(벨 참) 자[* 판에 따라 令(명령 령) 자가 있기도 하다.]가 적힌 패를 하나 꺼내들고, 패를 죄수를 향해 내던지며) > 3: 鍘! > '''쳐라!''' : 가끔 "베어라!" 나 "처형하라!", "집행하라!"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었다. > ---- > 이상의 중국어 대사는 [[판관 포청천/방영 목록#s-5|탐음산]] 편 기준. 이때의 포청천은 그야말로 [[간지폭풍]]. 그러나 천륜겁(천륜)이나 이묘환태자(내궁비화)같이 포청천의 친한 친구가 죄를 지어 작두형을 직접 집행해야 하는 가혹한 경우도 있어서 이때는 포청천도 슬픈 표정으로 앞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등 뒤로 패를 던질때도 있었다. 당시 인기리에 방송된 [[모래시계(드라마)|모래시계]]에서 강우석이 친구 박태수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장면이 나왔기에 그것과 마찬가지로 화제를 불러왔던 부분. 1993년판은 [[KBS2]] 방영시에 자체적으로 배경음악을 삽입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대만 원판은 음악이 너무 중국스럽거나 심심한 경우가 많아 더빙시 한국정서에 맞게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선택인 듯하다.], 영화 [[동방불패(영화)|동방불패]]와 [[백사전|청사]]의 음악이 주로 메인으로 나왔으며, 그외에도 [[취권|취권2]] '조이락클럽', '[[도망자(영화)|해리슨 포드의 도망자]]', '나이트 무브', '에이라의 전설' 등의 영화음악이 쓰였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도 많이 나왔는데, 예를 들면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로도스도 전기]],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 [[란마 1/2]] [[https://www.youtube.com/watch?v=ahaGNeA7odA|극장판1기]]의 음악들이 쓰였다. 심지어는 [[반젤리스]]의 음악이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방영 당시에는 베른협약 가입이 안 된 터라 외국 음악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시대였고, 1987년 국제저작권협약(UCC) 가입 이전의 것은 법적으로 저작권을 보호받지 못한 터라 맘껏 쓰기도 했던 때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문화 개방전이라 이 점을 신문에서 지적하기도 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51600329118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5-05-16&officeId=00032&pageNo=18&printNo=15426&publishType=00010|당시 기사]] 물론 1998년 개방 이후에 와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작품의 스케일이 크다 보니 고정 배역 외의 성우들도 화려했다. [[유강진]], [[박상일]], [[황원]], [[김정경]], [[남궁윤]], [[유민석(성우)|유민석]], [[온영삼]], [[유만준]], [[주호성]], [[탁원제]] 등 196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원로 성우들부터 [[강수진(KBS 성우)|강수진]], [[홍시호]], [[김민석(성우)|김민석]], [[문관일]], [[이재용(성우)|이재용]], [[문일옥]], [[최덕희]], [[김승준(성우)|김승준]], [[김일(성우)|김일]], [[서광재]], [[한호웅]], [[김순영(성우)|김순영]], [[문선희]], [[조진숙]], [[구자형]], [[이선(성우)|이선]] 등 당시 [[프리랜서]]가 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성우들까지 총망라하였다. 포청천의 오랜 인기로 금요일 9시 50분이라는 시간대에 시청자들을 자연스럽게 붙드는데 성공한 KBS는 포청천의 종영 이후에도 [[견자단]]이 주연한 [[정무문]] TV 시리즈 등을 비슷한 시간대에 편성하여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려 시도했지만 모두 포청천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는 이후 방송한 홍콩 aTV에서 제작한 포청천 1995(신 포청천)을 파일럿으로 딱 1부만 방송하고 접는 단초가 된다. 홍콩 aTV에서 제작한 포청천 1995는 아시아앤에서 전편의 판권을 사들여 2021년 4월 27일부터 방송이 시작되어 26년만에 전편이 방송되었다. 중국에서 만든 드라마가 압도적으로 시청률 1위를 기록하자 언론에서는 왜 이런 사극을 한국에서 만들지 못하냐고 질타하였고, [[KBS]]에서 엄청난 예산과 엑스트라를 동원해 블록버스터급 사극 드라마를 만들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용의 눈물]]'''이다. [[https://youtu.be/c60_mj4W51M?t=416|#]] 그리고 KBS에서 당시 방영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인 폭소대작전에서는 아예 이를 패러디한 판관 '''뽀'''청천[* 코너 초창기에는 판관 '''서'''청천이었으나 뽀청천으로 제목이 변경되었는데, 포청천 역이 개그맨 [[서원섭]]에서 개그맨 [[이용식]]('뽀식이'라는 별명이 있다)으로 변경되면서 제목이 같이 바뀐 것. 덤으로 [[공손책]]도 공'''갈'''선생으로 바뀌는 등 패러디답게 정신나간 네이밍이 일품이다.]이라는 코너를 내놓기에 이른다. 전조역을 [[배동성]]이 맡았는데 처음에는 진지하게 열받은 표정으로 뽀대인! 이런 나쁜놈은 제가 처단하겠습니다! 라고 설치다가 칼이 뽑히질 않거나 칼이 뽑혀도 부러져 있거나 전혀 엉뚱한 것이 뽑혀나오거나 하는 식으로 웃음을 줬다. 그리고 [[황비홍]]을 패러디한듯한 '홍비홍'이라는 캐릭터가 찬조 출연하면서 '머리어깨 무릎발 무릎발 묵사발'같은 [[개드립]]을 치기도 했다.[* [[이창명]]이 맡아서 열연했으며, 뽀청천이 "야~ 창명아~!!"라고 하면 웃음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도 다루었는데 바로 교통사고 문제 같은 것 운전을 함부로 해서 폐를 끼친 사람을 타이어에 끼워 옴싹달싹 못하게 한 다음 마구 두들겨 패고 끝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폭소대작전 말기시절([[1996년]]경)에는 당시 뉴스에 연일 오르내리던 한보그룹 당시 [[정태수]] 회장을 패러디한사람[* 당시 청문회를 TV로 보던 사람들의 분통을 터트리게 만든 '모릅니다'로 일관하는 대답 스타일과 깃털,몸통 드립까지 깨알같이 패러디했다.]을 뽀청천이 심판하는 에피소드까지 나와서 포청천이 가진 사회풍자적 기능 역시 훌륭하게 패러디 소재로 활용했다. 실제 배우인 [[김초군]]은 한국에서 제일약품의 진녹천이라는 제품의 광고를 찍기도 했다. [youtube(Hq39haQ7Nlw)] 이러한 인기는 당시 어린이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의미에서는 서브컬쳐의 아동대상 인기 척도라고 볼 수 있는 아동용 [[운동화]]로도 나왔다는 것은 한국에서 본작의 인기가 엄청났다는 것을 반영하는 사례중 하나. 당시 대양고무가 '슈퍼카미트' 브랜드로 발매했는데, 골 때리는 것이, 신발을 사면 [[작두]]모양의 연필깎이를 끼워주는 정신나간(?) 센스를 자랑했다. 물론 작두가 포청천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뭔가 괴이한 것이...[* 해당 운동화는 그 당시에 지상파에 방영하는 만화를 주제로 한 운동화를 구매하면 그와 관련된 장난감을 제공하는 신발이였다. 작품마다 장난감의 퀄리티가 제각각인데, [[태양의 용자 파이버드|지구용사 선가드]]는 시계로 변신하는 리스터를 제공했지만 정작 정품과 비교하면 퀄리티가 나빴고, [[녹색전차 해모수]]는 원작과는 다르지만 나름 고퀄리티인 전차모양의 조립식 프라모델을 선보였다.] 애들 신발에 [[단두대]]나 [[전기의자]] [[미니어처]]를 끼워주는 격이었다.[* 단두대 미니어처 장난감은 단두대가 현역이던 19세기 유럽에서 실제로 팔린 적 있다. 그것도 날이 서 있는 걸로! 자세한 건 [[단두대]] 항목 참조.] 다행히 실제 날이 아닌 플라스틱이었기에 다행. 역사와 전통의 [[해피밀]]에서 전조 피규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진녹천은 지금도 나오고 있고, 진녹천 광고는 [[김마메]]가 더빙하여 [[합필갤]]에 쓰인다. 2015년에 포청천 2008이 채널 [[CHING]]에서 찰미안, 타룡포 순으로 우리말 더빙으로 신규 방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